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캡 앤슨 (문단 편집) == 선수시절 == 그러나 앤슨이 입단한 팀인 락포드는 프로 팀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수준이었던 팀이였다. 앤슨은 신인으로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지만 팀은 '''4승 21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거두었고, 결국 창단 1년만에 해체되었다. 결국 앤슨은 어쩔수없이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에 합류했다. 필라델피아에서 앤슨은 뛰어난 타격감을 선보이며 필라델피아 이적 첫 해 타율 .415, 다음 해에 .398를 기록하며 맹활약했지만 필라데피아는 재정적인 문제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1876년, NA가 해체되고, [[시카고 컵스|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의 구단주 윌리엄 허버트의 주도로 내셔널리그가 창설되었다. 허버트의 [[시카고 컵스|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는 NA에서 뛰던 스타선수들을 영입하였고, 이 때 앤슨역시 시카고 유니폼을 입게되었다. 시카고 이적 첫 해, 앤슨은 .356의 고타율을 기록하며 활약했고, 1877년, 1878년에도 각각 .337, .341의 타율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한명으로 올라선다. 1879년에는 팀의 감독이었던 알 스팔딩이 물러나며 감독직을 이어받으며 선수 겸 감독으로 뛰게되었다. 감독으로 부임한 앤슨은 여러가지 전술 고안했는데, 이 때 앤슨이 고안한 전술이 히트 앤 런, 투수 로테이션 등이다. 감독 부임 첫 해 앤슨은 시카고를 8팀 중 4위로 올려놓았고, 급기야 다음 해인 1880년에는 팀을 리그우승으로 이끌고 선수로서도 타율 .337 74타점으로 타격 2위, 개인 통산 첫번째 타점왕 타이틀을 차지하며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 다음 해인 1881년에는 2년 연속으로 팀을 리그우승으로 이끌고, 타자로서도 [[4할 타자]] 직전까지 가는 .399의 타율을 기록하며 그 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내셔널리그 타격왕 타이틀과 82타점으로 개인통산 2번째 타점왕을 차지하는 등 맹활약했다. 1882년 역시 시카고를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3년 연속 지구우승이라는 업적을 쌓았고, .362의 고타율과 83타점을 기록하며 근소한 차이로 타격 2위에 머물렀으나 개인 통산 3번째 타점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1883년에는 안타깝게도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4년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달성에 실패했고, 타자로서도 .308의 타율과 68타점으로 부진하며 아무런 타이틀도 얻지 못했다. 1884년에는 타율 .335 159안타 21홈런 103타점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부활, 개인통산 4번째 타점왕을 차지하며 타자로서는 승승장구했으나 시카고는 그 해 8팀 중 5위를 차지하여 감독으로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1885년에는 타율 .310 144안타 108타점으로 개인통산 5번째 타점왕을 차지, 팀도 3년만에 리그 챔피언 자리를 탈환하며 앤슨은 감독으로서 통산 4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1886년에는 '''타율 .371 187안타 147타점'''으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이런 고타율에도 불구하고 타격왕 자리는 타율 .388을 기록한 킹 켈리에게 내주었다. 하지만 팀의 우승을 이끔과 동시에 개인통산 6번째 타점왕을 차지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1887년에는 타율 .347 164안타 102타점을 기록하며 타격 2위 기록했고, 팀을 3위로 이끌었다. 1888년에는 타율 .344 177안타 84타점을 기록하며 7년만에 타격왕을 수상, 개인통산 7번째 타점왕을 수상했고,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1889년에는 타율 .342 177안타 117타점을 기록, 팀을 3위로 이끌었다. 1890년에는 타율 .312 157안타 107타점을 기록하며 타점 2위에 올랐다. 팀은 준우승에 머물렀다. 1891년에는 타율 .291 157안타 120타점을 기록하며 데뷔 이후 처음으로 3할 밑으로 타율이 떨어졌다. 하지만 개인통산 8번째 타점왕을 차지했고,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1892년에는 타율 .272 152안타 74타점으로 커리어로우 시즌을 보냈다. 팀도 12팀 중 7위를 기록했다. 시카고는 이후 하락세를 걷기 시작한다. 1893년에는 타율 .314 125안타 91타점으로 어느 정도 부활했으나 전성기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성적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데 커리어 로우 시즌이였던 1892년 당시 앤슨은 만 38세였다.] 팀은 전년도보다 성적이 더 떨어져 9위를 기록했다. 1894년에는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으며, 타율 .388 133안타 100타점을 기록했다. 팀은 8위를 기록했다. 1895년에는 타율 .335 159안타 91타점을 기록하며다시 한번 부활했는데, 이때 당시 앤슨의 나이는 '''만 41세'''였다. 팀도 역시 다시 성적이 올라가며 4위를 기록했다. 1896년에는 타율 .331 133안타 90타점을 기록하며 자신이 아직 안죽었다는 것을 과시했다. 팀은 5위를 기록했다. 1897년에는 타율 .285 121안타 75타점을 기록했고, 팀은 성적이 떨어지며 9위를 기록했다. 앤슨은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으며,성적부진으로 인해 감독직에서도 물러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